환경의 중요성에 순위를 매긴다면(1)
지난해 환경재단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문득문득 예전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연어만큼 기억을 거슬러 가면, 1976년 가을이 됩니다. 긴급조치를 위반했다는 이유로 안양교도소에 갇혔습니다. 함께 갇힌 사람들과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열띤 토론이 벌어졌고, 대부분의 동료는 노동운동에 헌신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습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달랐습니다. 전공을 살려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공해’를 택했습니다. 엉뚱한 선택에 동료들이 보탠 농담이 있습니다. “야, 임마! 공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
낯선 시작이 순탄할 리 없겠지요. 당시엔 공부를 하려해도 변변한 책 한 권 없었어요. 염치불고, 어머니에게 일본 공해책을 구해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접한 책들은 한 가지 깨달음을 안겨줬습니다. 자연과학의 시선으로 접근하려던 공해 문제가 사실은 세상의 모든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공해 피해를 입은 주민에겐 의사가 필요하고, 오염된 토양과 바다에겐 토양전문가와 해양학자가 필요하고, 공해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책 전문가가 필요합니다. “내가 너무 큰 주제를 잡았나?” 계속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했습니다. 3년 동안 250여 권의 책을 읽으면서 얻은 확신이 길을 열어줬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앞으로 전지구적 차원에서 재앙이 나타나고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가 살기 힘들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세계에서 산업화와 도시화가 가장 빠르게 진행된 시절이라 공해 문제도 가속도가 붙었습니다. 피해를 입은 주민들과 함께 기업과 정부 정책의 변화를 꾀하는 동시에 일상에서의 공해 문제를 해결하는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당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농약과 비료를 뿌리는 나라였습니다. 주방 세제는 독성이 강한 탓에 주부들의 지문을 지울 정도였고, 편리하다는 이유로 선택한 인스턴트 가공식품은 식품 첨가물 범벅이었습니다. 사람들을 설득할 캐치프레이즈가 필요했습니다.
“공해란 죽음을 향한 완행열차다.” 조금 무시무시한가요? 하지만 이런 설득이 절실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공기나 물, 음식으로 발생한 피해는 원인을 알기 어렵습니다. 그 와중에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인 공해는 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었습니다. ‘공해’라는 단어 대신 ‘환경’이라는 단어가 자연스러운 시절이 된 후에도 우선순위는 여전히 뒷전이었습니다. 대응이 늦을 수록 위기 경보가 훨씬 클 수 밖에 없는 분야인데도요.
“21세기는 환경, 문화, 여성의 시대가 될 것이다.” 21세기를 앞두고 만든 첫 캐치프레이즈입니다. 바람을 담았는데, 현실은 어떨까요? 다음 레터에는 ‘환경’이라는 키워드가 21세기에는 어떻게 가장 중요한 순위가 될 수밖에 없는지를 찬찬히 말하려 합니다.